비너스의 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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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궁상 2004/09/15 05:14 by 철구
PT는 성공적이었다. 클라이언트는 흡족한 표정으로 박차장과 악수를 나눴다. 박차장의 손을 꽉 쥔 그의 악력이 난 뿌듯했다. '

'훌륭한 부하를 뒀구먼. 부러우이~'

그 악력의 세기와 비례해서 박차장은 법인카드를 건넸고, 나는 팀원들과 회식을 가졌다. 3차쯤이었다는 기억이다. 내가 바텐더 아가씨의 전화번호를 막 따냈을 즈음이니까.

"Imagine. There's no heaven"

민식이었다. 술에 절은 가사가 바에 일렬로 앉아있던 직원들의 귀를 끌어당겼다. 여직원 둘은 민식에게 준 시선을 거둬 금세 나에게 뿌렸다. 녀석을 쏘아보고 있던 나의 칼눈이 그녀들에게 들켜버렸지만 거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 새끼, 지금 나 엿먹으라는 거지.

존레논의 낭만도 술 앞에서는 추접스러워진다. 민식의 "이매진"은 분명 내 눈에 추했다. 그의 무능과 우유부단과 부적응만을 드러낼 뿐이다. 녀석은 이번 광고에서 "이매진"을 써서는 안 된다고 떠들었다. 구체적인 기획안이 나왔던 3차 미팅 때였다.

"소유물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요, 당신이 상상할 수 있을까요, 탐욕을 부릴 필요도 없고, 굶주릴 필요도 없고... 이 가사가 이번 광고주한테 맞다고 생각하는 거냐? 웃기지마. 이건 솔직히 사기다."

민식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녀석과 나를 가르고 있던 공간에 수없이 많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부하직원들은 그 깨질 듯한 위태로움 앞에서 우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1절만 쓸 거야. 1절만..."
"1절?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이걸 쓴다고? 게다가 이 BGM 위로 눈물을 흘린다고?"
"그럼 니 기획을 내!"
"냈잖아. 니가 보고도 안 하고 삭제해버린 거."
"그건 내 권한이고... 그 기획은..."

난 숨을 돌려 말을 이었다.

"민식아, 이건 기업광고가 아냐. 후보가 드러나야 돼. 니 껀 밝은 세상 만들자에서 끝나버려. 그 밝은 세상과 후보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후보 얼굴도 안 나오는 대선광고가 세상에...."

녀석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고, 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하지만 어쨌건 나는 계약을 따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성취감을 맛보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행복하고 뿌듯한 시간에, 이제 막 고속도로에 진입해 5단 기어를 넣고 속도감을 맛보려는 시간에 녀석이 대뜸 "이매진"을 불러 버린 것이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그 "이매진"을.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넥타이를 고쳐맸다. 녀석의 노랫소리는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너는 나를 몽상가라고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뿐만이 아니거든.' 그 가사가 귀에 들어와 가시를 세우자 나는 녀석에게 꼭 한 방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영훈씨가 민식이를 화장실로 끌고가지 않았다면 아마 바는 난장판이 됐을 것이다. 잠시 후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그 날, 녀석은 끝내 집에 가지 않고 골리앗 얘기까지 다 토해냈다. 그 잘난 골리앗 조종사의 드림까지 말이다.
2004/09/15 05:14 2004/09/15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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