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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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인 하성우(배창호)는 중고품 시장에서 우연히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수인(김유미)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단점이 보이고 그 때문에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함을 깨닫고 하성우는 다시 김수인을 찾아가 프로포즈를 한다.

# 90년대 그리고 배창호

90년대 들어 배창호 감독의 영화 '천국의 계단' '젊은 남자' 등은 명불허전도 이미 옛말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러브 스토리'도 그 연장선 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은 작품으로 여길 뿐인듯 보인다. 배창호 감독의 최고 전성기는 그가 기반하고 있는 헐리우드 고전 영화에서 출발하고 있었으며 때문에 그는 한국 영화의 미국화 경향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도 받았었다. '황진이'에서부터 비롯된 '꿈'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새로운 형식의 모색기 작품들은 그 열정만큼 성취도가 높지 않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채 서정성과 낙천성만을 볼모로 삼았었다.

96년도에 나온 '러브스토리'는 그의 영화적 경향의 가장 중요한 변환점이다. 사실 '러브스토리'는 그가 기반했던 헐리웃 고전 영화의 영향도 부인하지 않고 있고, 또한 그가 모색기에 탐구했던 롱테이크에도 매달려 있으며, 주관주의라는 입방아에 올려졌던 서정성과 낙천성을 버리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왜 '러브스토리'가 그의 가장 중요한 변환점이 되고 있을까?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을 강박적으로 버리려 하거나 매달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조화하여 융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차근 차근 살펴보기로 하자.

# 헐리우드 고전 영화와 '러브스토리'

그가 한 때 추구했던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사실 그의 영화적 기반이 헐리우드 고전 영화였다는 사실 때문에 종종 부딪히곤 했다. 예를 들면 그가 추구하려 했던 한국적인 것이 영화 언어의 변별성이였고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장면화와 롱테이크로 나타났지만 그런 장치들이 서사내용과 충돌하기 때문에 양자가 유기적이지 못했다는 점 들이다. 헐리우드식 어깨너머 나눠찍기는 이제 그만 TV에게 양보하라고 그에게 쏟아졌던 비난이 오히려 그에게는 억압기제가 되었는지 헐리우드에 대한 거부로부터 비롯된 집착적인 새로운 영화언어의 모색은 오히려 감독 자신뿐만 아니라 관객에게까지 거북했다. '황진이' 이전의 작품이 서사 구조에 영화 언어가 종속되었었다는 비판 때문에 시작된 새로운 모색은 역으로 '황진이' 이후의 작품에는 영화 언어에 서사 구조가 종속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러브스토리'에도 헐리우드식 스토리 텔링이 다분하다. 두 연인이 만나서 좋아하다가 싸우고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 구조 뿐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어깨너머 나눠찍기, 정사와 역사로 이어지는 주고 받기식 대화 구성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전혀 껄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면 '러브스토리'가 주로 구축하려 하고 있는 배창호만의 테이크의 미학이 이런 점들을 억지로 힘겹게 거부하지 않고 품넓은 그의 생김새마냥 한껏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성우와 김수인이 카메라 쪽으로 걸어오며 대화하는 장면은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그들과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한번에 롱테이크로 간다. 왜냐면 인물의 움직임이라는 요소가 긴 시간 화면의 지루함을 다소 간에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주로 두 인물의 대사로 일관하고 있고 그 인물들이 항상 이처럼 동작을 수반하지는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 긴 테이크만을 고집하다가는 어설픈 예술 영화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럴 때 배창호는 과감히 정사와 역사를 통한 인물의 주고받기식 커트 분할 뿐 아니라 어깨너머 나눠찍기도 사용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긴 시간 화면의 효과를 죽이지도 않는데 왜냐면 커트 분할이 의미의 분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의 연속선 안에서 인트라 시퀀스 커트마냥 작용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위해 기존의 것, 유입된 것들을 버리려고만 하던 몸부림이 다시 그런 것들을 끌어 안음으로써 오히려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 영화 언어와 서사 내용의 엇갈림은 이제야 제대로 방향을 잡아 오랜 엇갈림을 종결하게 된 것이다.

# 롱테이크와 '러브스토리'

전언한대로 '러브스토리'에도 그가 '황진이'부터 탐색하던 긴 시간 화면이 살아있다. 긴 시간 화면은 영화에서의 시간적 리얼리즘과 깊게 관련된다. 자연의 시간에서 오는 리얼리티를 지키려는 의도는 배창호의 경우 지속 시간이 유지되는 동안 인물의 대사, 동작 등의 리얼리티를 시점의 변화없이 지키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긴 시간 화면은 먼 거리 화면과 일란성 쌍생아라 일컬어 지는데 왜냐하면 먼 거리 화면이 주는 시각 정보의 풍성함은 관객이 그러한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있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창호는 먼 거리 화면은 유지할 지라도 시각 정보를 풍성하게 베풀어 놓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딮포커스를 살려 화면 내의 모든 피사체를 볼 수 있게 한다든지 혹은 그런 피사체들을 의미있게 화면구성하여 한 화면내에서 피사체들 간의 유기적인 의미 결합을 시도한다든지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러브스토리'에서 그러한 화면 구성이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겨우 한 두 씬 정도-연회에 초대받은 하성우가 함부로 말하거나 게걸스럽게 먹어대 김수인의 눈 밖에 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김수인을 화면의 귀퉁이에 걸쳐놓고 하성우의 그러한 점들을 부각시킴으로써 그러한 행동이 김수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를 설명하는 의도적인 인물 배치를 보여준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의 시간에서 오는 리얼리티만을 지키려는 배창호의 계속되는 시도는 리얼리즘에 대한 그의 견해를 보여주고 있는 예이다. 피사체의 공간 배치는 다분히 작위적인 행위이며 그것이 화면 안에 나타날 리얼리티를 위해 장면을 조작하는 것이라 해도 그러한 조작으로 인해 생겨나는 피사체간의 치밀한 유의미성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그는 오히려 공간내의 시각 정보에 얽매이는 긴 시간 화면보다는 긴 시간 화면이 주는 본래적인 효과만을 중시하고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러브스토리'에는 그러한 긴 시간 화면으로 공간을 포착하는데 있어서도 색다른 면모를 보이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마주보고 대화하는 두 인물의 장면을 정면에서 찍고 다시 후면에서 찍는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카메라는 마주보고 있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180도를 왔다 갔다 한다. 이는 카메라 렌즈가 갖고 있는 시계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다. 인물이 존재하는 공간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카메라는 그 한계를 넘어 움직이면서 그 공간적 상황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려 하는 것이다. 마치 '강원도의 힘'에서 홍상수가 사용했던 부감샷과 같은 방법으로 배창호도 공간을 이끌어 가고 있다.

# 서정적 리얼리즘과 '러브스토리'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서정성이나 낙천성과 같은 주관주의가 그 자체만으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너무나 자주 그것에 매달려 환상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했다. '러브스토리'는 이 점에서 자유롭다. 왜냐하면 '기쁜우리 젊은 날' '고래사냥' '안녕하세요 하나님' '꿈' '천국의 계단' '젊은 남자' 등에서 그가 보여주려 했던 이야기들의 성격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브스토리'는 그의 자화상이며 자서전이다. 또한 이처럼 자화상을 그리려 했던 그는 그간 자신이 알고 있던 영화에 대한 믿음을 다시 쌓기를 바랬다고 말한다. 그럼으로 '러브스토리'는 새로운 길을 떠나는 그가 어디로 무엇을 위해 떠나야 하는가를 알아내기에 앞서 들여다본 자신의 모습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편 이처럼 객관적으로 실존하는 현실에서 출발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가 지닌 서정성이나 낭만적 낙천주의 등은 필요없는 것일까? 그러나 '러브스토리'는 역시 배창호의 영화답게 여전히 서정적이며 낭만적이고 낙천적이다. 시골 민박집 창호지에 비추는 연인의 그림자는 촛불에 흔들리며 춤을 추고 있으며 카페에서 촛불로 수인의 앵글을 잡아주는 성우의 얼굴에는 사랑이 배어나고 있다. 역사에서 만난 영문모를 할아버지의 모습은 리얼리티를 해치더라도 그만의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결국 그간 현실의 문제를 무시하고 서정주의에만 치우쳤다는 서정적 리얼리즘에 대한 그의 단점은 비록 현실의 문제와 모순점들을 조명한 것은 아니더라도 현실 그 자체를 조명한 '러브스토리'에서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도 그만의 서정성을 잃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 배창호 그후

사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더라도 '러브스토리'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다. 실제 부부의 호흡이 잘 맞는 연기도 좋았을 뿐더러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는 것이란 또 무엇인지 진솔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어 좋다. '편지'에서처럼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러브레터'처럼 지워버려야하는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은 사랑이란 무엇이다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그러나 보는 사람은 이미 사랑이란 무엇인지 느끼고 만다. '묘사하려 하지 말고 물의 흐름을 보여줘라' 르느와르의 이 말처럼 '러브스토리'에 잘 맞는 표현은 없을 듯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때 한국 영화의 최고 흥행 감독이었으며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불리웠던 배창호 감독이 지금 털털 털어모은 단돈 5000만원으로 게릴라처럼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였고 오히려 작품이 잘 나와서 더 흐뭇하다라고 '러브스토리'에 대해 술회하던 배창호 감독의 모습이 내게는 그리 흐뭇하지만은 않다. 걱정하던 대로 흥행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만들어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영화의 가치판단의 지표는 흥행 성적에서만 시작되는 것이다.



철구 백
2003/01/12 06:19 2003/01/1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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