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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궁상 2004/04/04 14:55 by 철구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이 팔렸을지 생각해 본다. 역시 나에겐 별 재미없지만, 책 속에서 던지는 오시마 상의 한 마디는 의미가 있다.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나의 상상력은 너무 논리적이다. 그래서 상상으로써의 매력은 없다. <해변의 카프카>의 이 황당한 상상력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신화들 또한 황당한 상상이 빚은 이야기. 나는 여기서 케케묵은 나의 근대성을 본다. 논리와 이성을 믿는 가련한 수도승은 백년 전에 폐허가 된 근대의 부랄을 목탁치듯 두드리며 혼자 길을 걷는다. 정치적으로는 이제야 갓 근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감성은 당연하게도 이미 근대를 넘어서 있다. 이건 불협화음인가? 모르니까 여전히 근대의 부랄을 목탄친다.

신화의 시대는 시의 시대. 신화의 등에 차가운 칼을 꽂은 이는 과학과 이성. 소설은 그렇게 신화의 등에 새겨진 칼자욱에서 그 피를 먹고 태어났지만 <해변의 카프카>는 황당한 신화같다. 예술가는 행복하다. 이처럼 무책임하게 시대를 뛰어다녀도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의 공허한 상상력에 대한 그의 칼은 역으로 나의 등을 겨눈다. 미스김이 커피배달을 하다가 거리 보도블럭 틈바구니에 끼어 수선화로 변하고, 스쿠터의 요정이 태양의 흑점에 가서 그녀의 육신을 공동구매하는 이야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그런 이야기에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감성은 빌어먹게도 구태의연한다.
2004/04/04 14:55 2004/04/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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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바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키 아직도 그 빌어먹을 상상력 타령 하고 있나요. 상상력이라는 것도 시대가 기반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인데, 빡터지게 싸우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고 상상력 키우기 힘들었던 자기 동료들 보며 &#039;상상력이 부족해서 글러먹었어&#039; 어쩌고 하는 건 상상력이 아무리 풍부한들 기본적 싸가지가 겁대가리를 상실한 거죠. 물론 이 말이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간 사람들의 그 괴물성을 옹호하려는 게 아님은 아실 것이고... 게다가 정치와 투쟁이 상상력이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인양 호도하는 것도 (혹은 호도되는 것도) 졸라 맘에 안 들어요, 하루끼.

    2004/04/06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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