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나의 자판은 김훈의 자전거에 동승한다. 여름의 하늘에는 언제나 가을이 겹쳐 있다. 가을은, 옥작복작한 여름의 지상 위로 어느 틈에 올라와 소슬히 내려다 보고 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는 법을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이 풍경은 그렇게 알려준다. 나와 우리들은 한 걸음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이 복작거림의 주범이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아가씨의 머리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고운 샴푸향과 누군가의 점심 도시락에서 풍겨나오는 따뜻한 계란말이 냄새와 잠에 취해 연방 고개를 모이 쪼는 한 아저씨의 아직 가시지 않은 어젯밤 술냄새와 내 고되고 오랜 담배냄새가 뒤섞인 이 버스 안처럼 우리는 이 지상 위 모든 것의 주범이다. 나와 우리는 매일 분노하고 매일 실망한다. 매일 좌절하고 매일 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뒷전이다. 나는, 우리는, 나의, 우리의 감정의 주범이다.
한 여름 버스에서 내리는 기분은 대륙을 건너온 양싶다. 차고 건조한 북녘 어딘가에서 습하고 더운 열대의 어딘가로 문 하나를 나서면 옮겨간다. 촉각이 당황해 감각하기를 잠시 잊으면 이 여름의 햇살은 그대로 천국. 뜨겁고 따갑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여름 햇살의 찬란함만큼 시각적으로 강렬한 것도 없다. 가로수의 그 웅숭깊은 녹색마저 기어이 뚫고 지상에 부딪혀 조각나면 그것은 연두 혹은 진노랑으로 산개한다. 여름의 햇살은 정말로 직진한다.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무언가에 부딪힌다고 반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상에 사뿐히 내려앉는 대신 온 몸으로 달려가 산산히 부서지고 흩어진다. 여름이 정열적인 계절이라면 그 까닭은 온전히 햇살의 힘이다. 햇살이야말로 여름의 진수다.
그리고 이 햇살은 무엇보다도 공평하다. 이 햇살을 즐기는 데에는 빈부, 노소, 남녀가 없다. 광화문에도, 도곡동 타워팰리스에도, 그 그늘 뒤에 숨은 구룡마을에도, 청와대 뒷산에도, 광주 망월동에도, 함민복이 시를 낚는 강화도에도, 제주도 환두기 내 흉진 고향에도 이 햇살은 공평하다. 그저 공평하지 않은 것은 매일 분노하고, 매일 실망하며, 매일 좌절하고, 매일 망각하는 나와 우리. 모든 걸 공평하게 물려받은 안에서, 모든 걸 공평하지 않으려 옥작복작 수선 피우는 나와 우리는 과연 진심으로 '공평'이란 단어를 알고 있을까? 나는, 우리는, 나의, 우리의 무지의 주범이다.
참으로 공평하게도 광화문에도 매미는 쩌렁쩌렁 운다.
나의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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