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산 참사 철거민들에게 징역 5~6년이 선고됐다. 경찰의 과잉진압은 적법한 공무수행이라고 판단했다. 속에서 무엇인가가 부글거리는데 쏟아내긴 싫고 점점 픽션의 세계로 도망간다.
2.
김훈의 <공무도하>는 쓰다 만 소설 같다. 네이버 연재를 한다고 할 때부터 어쩌면 예상됐던 일이었다. 김훈은 컴퓨터를 쓰지 못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써야 하는 일에 치었을 수도 있다. 그가 기자 생활에서 얻은 시선과 문장으로 지면을 채웠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자의 눈과 작가의 눈은 다르다. 기자는 진실보다는 팩트를 본다. 팩트는 육하원칙 아래서만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작가가 바라보는 진실은 그 팩트에 작가의 마음을 더한 것이리라. 수많은 작가가 자기만의 수많은 진실로 자기가 본 수많은 세상을 그렸다면, 그것의 기초가 되는 팩트로만 이뤄진 세상은 이채롭다. 이채롭긴 한데 <공무도하>는 그 뿐이다. 그래서인지 김훈은 글을 마치며 다시 관계를 혐오한다고 투정부린다.
그래도 나는 아직 김훈이 쓴 <언니의 폐경>, <남한산성>, <화장>을 사랑한다.
3.
<공무도하>의 평이 어떤가 검색해 보는데 김훈의 '보수성'이 싫다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내 기억에 김훈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의 보수성을 내보인 적은 없다. 또 그리고 그 보수성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다. 한겨레21 인터뷰는 자기가 자기 입으로 자신에 대해 말한 것일 뿐이다. 공적인 부분에서 평가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보수성은 드러난 적이 없는 것이다.
'편 가르기'가 점점 더 부질없어진다. 딴지일보를 사랑했던 나는 요즘의 딴지일보에 인상을 찌푸린다. 과거 '서프라이즈'를 보는 느낌인데 같은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티일 뿐 유머는 없다. 그 정치적 지향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편 가르는데 그것은 정치인들에게 어울리지 미디어에게는 어울리지 않다. 예전 딴지일보가 엽기나 유머로 모여 놀면서 정치를 얘기했다면 지금 딴지일보는 반이명박으로 모여 놀면서 유머를 얘기한다.
4.
사실 '보수'라는 단어는 혐오나 부정의 대상이 아니다. '보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이고 없어서는 안될 단어다. 지금 '보수'라는 단어로 치부되며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은 '보수'가 아니다. 그들을 향해 '보수'라고 부르면서 '보수 VS 진보'의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일이다. 왜냐면 '보수'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고 그 구도라면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익을 위해 공동체에 사기치는 집단은 '보수'도 아닐 뿐더러 공동체에 필요치도 않다. 그래서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보수 VS 진보' 논리는 없어져야 한다.
용산 참사 철거민들에게 징역 5~6년이 선고됐다. 경찰의 과잉진압은 적법한 공무수행이라고 판단했다. 속에서 무엇인가가 부글거리는데 쏟아내긴 싫고 점점 픽션의 세계로 도망간다.
2.
김훈의 <공무도하>는 쓰다 만 소설 같다. 네이버 연재를 한다고 할 때부터 어쩌면 예상됐던 일이었다. 김훈은 컴퓨터를 쓰지 못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써야 하는 일에 치었을 수도 있다. 그가 기자 생활에서 얻은 시선과 문장으로 지면을 채웠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자의 눈과 작가의 눈은 다르다. 기자는 진실보다는 팩트를 본다. 팩트는 육하원칙 아래서만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작가가 바라보는 진실은 그 팩트에 작가의 마음을 더한 것이리라. 수많은 작가가 자기만의 수많은 진실로 자기가 본 수많은 세상을 그렸다면, 그것의 기초가 되는 팩트로만 이뤄진 세상은 이채롭다. 이채롭긴 한데 <공무도하>는 그 뿐이다. 그래서인지 김훈은 글을 마치며 다시 관계를 혐오한다고 투정부린다.
그래도 나는 아직 김훈이 쓴 <언니의 폐경>, <남한산성>, <화장>을 사랑한다.
3.
<공무도하>의 평이 어떤가 검색해 보는데 김훈의 '보수성'이 싫다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내 기억에 김훈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의 보수성을 내보인 적은 없다. 또 그리고 그 보수성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다. 한겨레21 인터뷰는 자기가 자기 입으로 자신에 대해 말한 것일 뿐이다. 공적인 부분에서 평가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보수성은 드러난 적이 없는 것이다.
'편 가르기'가 점점 더 부질없어진다. 딴지일보를 사랑했던 나는 요즘의 딴지일보에 인상을 찌푸린다. 과거 '서프라이즈'를 보는 느낌인데 같은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티일 뿐 유머는 없다. 그 정치적 지향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편 가르는데 그것은 정치인들에게 어울리지 미디어에게는 어울리지 않다. 예전 딴지일보가 엽기나 유머로 모여 놀면서 정치를 얘기했다면 지금 딴지일보는 반이명박으로 모여 놀면서 유머를 얘기한다.
4.
사실 '보수'라는 단어는 혐오나 부정의 대상이 아니다. '보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이고 없어서는 안될 단어다. 지금 '보수'라는 단어로 치부되며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은 '보수'가 아니다. 그들을 향해 '보수'라고 부르면서 '보수 VS 진보'의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일이다. 왜냐면 '보수'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고 그 구도라면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익을 위해 공동체에 사기치는 집단은 '보수'도 아닐 뿐더러 공동체에 필요치도 않다. 그래서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보수 VS 진보' 논리는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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