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사라졌다. 비는 국지성 호우로만 쏟아진다. 아열대 날씨처럼 습하고 무더운 하늘이 도심을 짓누른다. 뭉게구름은 겹겹이 먹물빛과 갈빛, 흰빛이 모두 무성하고 틈틈이 구멍난 바탕에는 샛파란 하늘이 명징하다. 하늘로만 치자면 태국에서 봤던 하늘인데 그 아래 마천루는 영락없는 서울이다.
전에 알던 필리핀 친구는 한국 겨울을 맞고 얼굴에 버즘이 폈다. 버즘도 처음이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는 것도, 더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도 처음이랬다. 사람 사는 게 다 같진 않은 모양이다. 다 같진 않은 모양인데, 그래서 나는 일상(日常)을 살고, 내 오랜 친구는 이상(理想)을 산다. 그치가 사는 이상은 과거 내가 살던 일상이었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으니 사는 품새도 달라질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일상을 아주 잘 견디어 낼 수 있다. '견디다'는 동사는 '칼의 노래' 서문을 꺼당긴다. 요즘 김훈을 무진장 읽은 탓이겠는데, '칼의 노래'는 그 서문이 명문이다. 한겨레21과 가진 단 한 번의 인터뷰로 시사저널 편집장에서 물러나 고독한 글쓰기를 하는 그의 심정이 절절하다. 이런 식이다.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그리고 긍정할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 대고 그는 끝으로 이렇게 말한다.
오라,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 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그는 첫 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말머리에서 자신이 부리는 '말의 군단'을 언급했다. 그는 그 군단으로 세상을 읽어내려 했었는데 불과 얼마 후 그의 군단은 겨우 12척, 명량을 거쳐 150척, 노량으로 모였다. 군단과 150척 사이의 차이는 견디는 것이었을 터이다.
나는 일상을 살고 그치는 이상을 산다. 나는 일상을 아주 잘 견디어 낼 수 있다. 매년 오던 장마가 사라졌다. 올 여름은 익숙하지 않다. 나는 일상을 아주 잘 견디어 낼 수 있다. 나는 그리고 누구도, 아직은 마지막 바다 노량을 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