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아름답지만 내 고향 제주는 아름답지 못하다. 내 유년이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내 유년의 기억은 가난했던 것처럼 제주는, 그 땅을 스치는 사람들과 그 땅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각인된다.
좋은 고장에서 자라서 좋겠다는 사람들의 물음 앞에 그래서 늘 나는 난감하다. 살기야 좋죠가 쭈삣한 나의 답이지만 조사 '~이야' 뒤로 감춰 놓은 제주에는 태풍 때마다 퉁퉁 부은 시체를 뱉어 내는 바다와 변덕맞은 날씨만큼 변덕맞는 앞날에 변덕 부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수없이 이어지는 4월의 징그러운 제사가 들어 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거의 모든 제주는 아름다운 낭만의 섬이고, 모국 안에 있는 이국의 바다고, 사시사철 따뜻한 휴식의 땅이다. 제주는 그래서 타자의 눈에서만 산다. 그 섬이 겪어 온 각박과 죽음과 회한은 '관광도시 제주'에는 전혀 필요치 않다.
아마 1988년 이전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김훈은 제주의 이 슬픈 단면을 단번에 잡아챈다.
...제주사람들의 오랜 마음속을 불어가는 또 하나의 모진 바람은 수평선을 넘어오는 몽고, 왜구 또는 포악한 경래관(京來官) 들이 몰고 오는 폭력에 가득 찬 역사의 바람이다...
...바람 부는 역사 속에서, 제주의 삶과 제주의 정서는 바람에 불려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끝내 땅에 들러붙는다. 여행자의 건달기와 너절한 심미주의만을 버릴 수 있다면, 매일 1천5백여 쌍의 신혼부부가 사진을 찍어대는 그 섬은 전혀 관광지가 아니다. 그 해안마을은 바람의 폭력 앞에 엎드린 자가, 엎드린 자로서의 싸움을 세워나가는 싸움터이다... (김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도서출판 푸른숲)
88년 이전이면 전두환 정권 당시 쓰였을 글이다. 4.3은 '포악한 경래관'으로 광복 이전 역사 속에 눙쳤다. 스치는 이들의 호사스러운 낭만과 감성은 이미 '너절한 심미주의'다. 다른 선택 없이 그저 관광지여야 하는 땅을 '전혀 관광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글에서 나는 동질의 정서를 느낀다. 매일 다른 남자의 손을 타야 하는 술집 작부가 비록 말할 수 없이 아름답더라도 어미라면은 곤란한 것이다, 눈물 나는 것이다.
자연의 폭력과 역사의 폭력 앞에 납작하게 엎드려야 하는 땅에 근래에는 자본의 폭력까지 불어닥치고 있다. 제주개발특별법으로 제주 땅의 70%는 이미 그 땅에 살지 않는 사람들의 소유가 됐고, 가장 통하지 않는 사투리이자 가장 소외된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제주국제도시는 영어까지 배우게 한다. 제주는 이제 마카오가 될 모양이다.
최근 제주도민들은 김태환 제주 도지사 주민소환을 청구했다. 김훈이 20년 전 쓴 대로라면 이 역시 '엎드린 자로서의 싸움'일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저도 제주가 고향인데..타자의 눈에서만 산다는 말 정말 공감합니다.저는 이야~라는 감탄사로 시작 되는 말에 살기야 좋죠라고 몇번을 떨떠름하게 대답했는지 원.
2009/07/09 02:14